박옥수 목사 '서울에서 온 영적 지도자'
2009.12.24 06:44:00
(서울=더데일리뉴스) 케냐 현지신문은 최근 아프리카 선교와 발전에 공을 들이고 있는 박옥수 목사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박 목사의 활동에 적잖은 감명을 받은 이 기사는 그를 우리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그리고 있다. 다음은 기사 전문이다.
박옥수 목사는 16년 전에 케냐에 푹 빠지게 되었고 이곳에 선교회를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 해 뒤에 그의 꿈은 이루어 졌다.
선지자는 자기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다. 하지만 박옥수 목사만은 예외이다. GBS의 설립자이신 박옥수 목사는 세계에서 존경을 받고 있다. 그의 고향인 한국에서부터, 아프리카의 큰 선교본부가 있는 케냐까지.
박옥수 목사는 방송국에 잠시 들렸다 가는 길에 너무 바쁜 일정 때문에 타운으로 가는 THIKA ROAD의 GBS 미니밴 안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때 길은 굉장히 많이 밀리고 있었다.
“저는 1944년에 태어났습니다.” 라고 침착하게 말씀을 시작 하셨다. 여러 번 말씀하신 이야기처럼 그의 말씀은 빠르고 확신 있는 억양으로 말씀을 이어 가셨다.
그가 말하기를, “우연히 이때 태어난 것은 아니다. 일본군이 한국을 점령하였을 때 많은 고통과 배고픔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세계2차 전쟁은 1945년도에 미국이 일본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 함으로써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정치적으로는 끝났지만 너무나도 쓰라리고 아픈 실망만 남겨두었다.
박옥수 목사는 말하기를, “나는 어렸을 때 단 하루도 기뻤던 적이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저희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고 저희는 항상 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8살 때 비극적인 일이 또 발생 했습니다.” 박옥수 목사의 삶은 공원에서 여유를 가지며 거느리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내전 (한국전쟁)
1953년도에 공산주의인 북쪽과 자본주의인 남한은 정치 지배권을 두고 내전이 있었습니다. 죽음과 가뭄이 땅을 뒤덮었고 그의 어머니와 두 누님 박옥수 목사와 그의 남동생에게도 어려움이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께서는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우리는 전쟁으로 인해 배고픈 고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다음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 소망 없이 밥을 구걸하며 다녔다. 거의 매일 저녁 누님과 한참 울다가 잠들기도 하였고 남동생은 이유도 모르고 같이 울었다. ” 박옥수 목사는 17세 때 대한민국 육군에 지원하였다. “나는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고, 배운 것도 없고, 뛰어난 것도 없었다. 소망도 없고, 직장도 없고, 그냥 군대나 가자! 하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자신이 진짜 죄인이고 선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아도 합당 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두 번째 장
하지만 이 모든 것은 18살이 되던 해, 1962년 10월 7일,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 날 나는 예수님을 영접 하였고 나의 삶은 바뀌었다. 나는 두 가지의 삶밖에 없었다. 내가 태어나서 그 해 10월까지의 인생 같지도 않던 그 삶,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삶.
복음을 바탕으로 그는 여러 선교 학교를 설립하고 군대에서는 동료 군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복음을 전하였다.
박목사님과 처음으로 가진 밴 인터뷰에서 목사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우리 소장님께 새로 오는 훈련병들에게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고 하였을 때 기뻐하시며 허락 하셨습니다. 한편 안심하게 되었죠. 소장님께서 절실한 기독교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복음이 그들에게 들어간다면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더 훌륭하고 충실한 젊은 군인이 되겠다고 생각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3년간 군대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변화 되었다.
케냐 대표단을 만남
1993년 한국에서 있었던 엑스포에 케냐는 20명의 대표단을 보내왔다. 박목사님과 사모님은 호기심으로 케냐 부스에 다가갔다. 동물들이 많이 있고 사파리가 있다는 것 밖에 모르는 나라에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직감으로 이곳에 하나님이 하실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박옥수 목사는 케냐 사람들을 집으로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저희들은 친해졌고 2틀 동안 한국관광을 시켜줬어요.” 케냐 무역부 장관이 감동을 받고 케냐로 초청 하였다. 박옥수 목사는 언제든지 복음을 전할 기회를 노치지 않고 1994년도에 냐요경기장에서 있었던 집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전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서 여기에 선교를 시작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6년 3월 1일, 처음으로 기쁜소식선교회는 케냐에 선교사를 파송해 선교를 시작 하였다. 현 케냐 담임 목사는 젊고, 키가 크고, 부드럽게 말하는 김재홍 목사이다. 그리고 GBS 방송국장은 허용GM 이다. 어디를 봐도 좋은 회사 경영인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성공적인 방송국
13년 뒤인 지금 현재, 박옥수 목사는 선교회에 400명의 학생이 있는 바이블 칼리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최첨단 디지털 장비 시설이 있는 Good News Broadcasting System도 있다.
허용 general manager는 말하기를, “55%의 GBS의 프로그램은 기독교 방송입니다.” “나머지 45%는 정보교양 프로그램, 드라마, 오락, 뉴스,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GBS의 일요일 프로그램만 봐도 뉴스, The Lighthouse, Out of Despair, 어린이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박옥수 목사는 지금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여야 하며,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지혜를 의지 해야 합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영적 이여야 하며 자신의 어떠한 큰 문제도 하나님께는 큰 문제가 아니다 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정확히 알게 되면 우리의 모든 죄가 씻어 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고 하였다.
1960년 군 재대 후에 박옥수 목사는 굶으면서도 교회마다 다니면서 “하나님이 항상 주신다”라는 말씀을 의지하며 복음을 전하셨다.
마태복음 6장 25절 ~ 26절 말씀은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영 무엇을 입을까 염려 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주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7년 동안의 수고
1969년에 한국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찬송을 마음에 담고 다니시다가 은혜가 쏟아지기 시작 했다.
“한 미국 선교사가 전도여행에 정확히 1년 동안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미국에 돌아가서 십일 정도 뒤에 선교사님의 교회에서 저에게 $350달러를 보내 주셨습니다, 1969년 당시에는 아주 큰 돈이었죠, 7년 동안의 고생 뒤에 하나님께서 포도주 잔을 조금 채워 주셨습니다.”
40년이 지난 뒤에 지금은 케냐에서 가나까지 그리고 미국에서 기독교단체의 일을 하고 계시는데 지금은 그 어느 누구도 한국에서 오신 하나님의 종의 포도주 잔이 흘러 넘치지 않는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GBS는 도덕에 관한 것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영적이고 영혼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Patrick Otembo
Gepa Media Holdings, Sales and Marketing의 director인 패트릭 오탬보는 GBS가 케냐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금은 세계 방송업계의 치열한 경쟁 업계가 되었다. 적극적이고 매력적인 그는, 1990년 말에 Kenya 라디오 업계로 이전 하기 전까지는 우간다 라디오 업계에서 처음으로 시작 하였다.
“Good News Broadcasting System은 모든 가정에게 소망을 주려고 한다. 특히 청소년부터 35세까지 목표로 한다.”
1980년도에 미국에서 마케팅 교육받을 받은 오탬보씨는 “내가 미국에 있었을 때 미국에서 유명한 TD Jakes 목사도 미국 사람들 만 이해 할 수 있는 농담을 하였습니다”
GBS는 기독교 방송으로 이 지역의 컨텐츠를 더 많이 활용하여 젊은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려 하고 있다. 케냐의 평균수명은 여자는 59세이고 남자는 53세이다. 오탬보는 말하기를 “GBS는 도덕적인 것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영혼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라고 하였다.
고진현 기자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idailynews@naver.com
* 미래를 여는 희망찬 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