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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없는 나라는 어떨까

2011.07.06 03:10:00

반세기 전의 일입니다. 1959년 4월 1일, KBS 대구방송 뉴스캐스터를 맡은 아나운서가 ‘특보’를 전했습니다. “오늘 방송국에 오시는 청취자들에게 라디오 한 대씩을 드리겠습니다.” 그때만 해도 TV가 없던 시절이어서 라디오는 집안의 중요 재산목록의 하나였습니다. 방송국 앞에 삽시에 수백 명의 시민이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헛걸음을 하고 말았습니다. 뉴스캐스터가 만우절을 맞아 독단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방송국측은 부랴부랴 해명과 사과 뉴스를 내보내고 시민들을 돌려 보냈습니다. 아나운서는 물론 징계를 받았습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큰 것을 골라 먹는다는 인성(人性)의 단면을 보여 준 에피소드였습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에서도 우리는 공짜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민주당이 내건 무상급식,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공약이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석을 휩쓰는 마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그 무상과 반값 신드롬에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까지 편승하면서 온 국민이 태풍보다 거센 회오리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50여 년 사이 우리나라는 상전벽해의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낳고 ,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 유례없는 IT강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30년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기구에 종사하는 한국인도 늘어 우리의 위상을 빛내고 있습니다.

울산 바닷가 뻘밭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한 조선 기술은 전 세계 고급 선박 발주량을 휩쓸고 있습니다. 드럼통을 잘라 망치로 두드려서 흉내를 내던 자동차 산업은 본바닥 미국에서 중형차 판매량 1위를 차지했습니다. 휴대전화와 가전제품은 세계 곳곳에서 한국산을 쓰지 않는 나라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공짜와 반값 정책으로 나라가 몸살을 앓아야 하는 이유는 나변에 있을까요? 어떤 계층이 표밭이고, 어느 곳이 노루목이며, 어떤 미끼가 좋을지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선심 공세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 정작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해야 할 말없는 다수는 생계에 쪼들리고, 소외되고, 희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최저생계비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임금 산출의 기초로서 이론적으로 계산해 낸 생활에 필요한 최소 비용입니다. 법률적으로는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매년 9월 1일까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다음 연도의 최저생계비를 공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재 정해진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53만 2,583원, 2인 90만 6,830원, 3인 117만 3,121원, 4일 143만 9,413원, 5인 170만 5,704원, 6인 197만 1,995입니다. 이 정도 ‘최저’의 생계비로 황제 부럽지 않은 식사를 하고, 문화생활까지 즐긴 국회의원이 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지난해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의 쪽방촌 1박 2일 경험담이 그렇습니다. 차 의원은 식비 6,300원으로 쌀 한 컵(800원), 쌀국수 한 봉지(970원), 미트볼 한 봉지(970원), 참치캔 한 개(970원)로 세끼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점심과 저녁은 쌀밥에 미트볼과 참치를 얹어 먹고, 아침은 쌀국수로 때우니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밤에는 황도 한 캔(970원)을 사서 책을 읽으며 음미하고, 아침 산책길에 조간신문 한 부(600원)를 사서 읽고, 1,000원은 사회에 기부하고도 20원이 남았으니 문화적 생활을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밥 먹으라고 준 돈으로 기부와 문화생활까지 즐겼다면 가장 서민적인 선량(選良)이라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한 인터넷신문의 대학생기자들의 체험담은 딴판입니다. 아침밥 한 끼를 아끼려고 늦잠을 청하고, 교통비를 아끼려고 걸었더니 더 배고프고, 지하철 역사 안의 델리만주 냄새에 회가 동하고, 뱃속이 비어 수업시간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차 한 잔 살 돈이 없어 친구도 못 만나고···.

문제는 그런 체험담으로 현상을 다 진단할 수도 없고, 해서도 곤란합니다. 공짜, 반값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고, 빵 만이 아닌 여유생활도 즐기고, 내집 마련의 꿈도 키울 수 있도록 말없는 다수에게 희망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한 여성 공무원을 예로 들어 봅시다. 일선 실무행정의 주역인 7급 공무원 Y씨(30)는 올해 초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가질까 말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가처분 소득이 월 150만 원 남짓. 자영업을 하는 남편의 벌이로는 전세방 얻는 데 빌린 대출금 이자 내기도 빠듯합니다.

출산과 산후 조리에만 200만~400만원, 맞벌이여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면 월 35만~70만원, 그것도 영어 조기교육이라도 시키려면 200만~250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유치원서부터는 더 많은 보육료와 학원비가 들고, 대학등록금은 1,000만원도 더 들 형편입니다. 공무원 급여가 늘어도 제대로 자녀를 키울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7급 이하의 공원은 전체 공무원의 절반이 훨씬 넘습니다. 그보다 못한 층도 수두룩합니다. 대학을 5~6년 다니고도 변변한 일자리 하나 못 구하는 고급인력, 비오는 날이면 공치는 막일 노동자, 달랑 집 한 채와 자동차 한 대뿐인데도 매달 15만~30만원씩 건강보험료를 물어야 하는 은퇴자들입니다. 밥 만이 전부가 아니어서 최저생계를 살아야 합니다.

들쑤셔서 그들의 허파에 바람만 들게 했다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닭 쫓던 개처럼 허망해질 뿐입니다. 실망이 커지면 가슴 속에 열불이 나고, 눈에 핏발이 서고, 이빨만 갈게 됩니다. 이러다가 ‘세금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허언이 나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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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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