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 파죽지세 확산 -‘포교전쟁’
2015.03.11 16:50:00
알라신 거부땐 ‘聖戰’으로 간주
이슬람교 급신장’ 으뜸 원동력
고대뿐 아니라 현대에도 이슬람교 신장세 괄목
다신교 사상 맞서 유일신 확립에 戰爭은 불가피
中國 몽고인의 원(元)제국 이슬람교에 우호정책
유럽과 미국 신자 폭증세 이민자 출신들이 선도
▲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오일달러를 배경삼아 이슬람은 지난 30년 동안 무려 3배나 급증했다.
현재 이슬람 신도 수는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12억 정도로 추산된다. 북아프리카, 아라비아반도와 이란에 이르는 이른바 중동지역과, 동부 러시아, 투르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서부 ·중국 ·인도에 이르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으며, 이제 한국과 일본까지 그 선교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한국에는 5개의 이슬람 성원과 6개의 이슬람 지회 하에 약 3만 4천명의 이슬람들이 알라의 부름에 충실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공히 개신교와 가톨릭 신도수가 급감 추세에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이슬람은 지난 30년 동안 3배나 급증했다. 프랑스는 이미 전체 인구의 10%인 600만 명 이상이 이슬람교도로 로마 가톨릭에 이어 제2의 종교로 부상했는가 하면, 독일 쾰른시의 이슬람 신자 수는 무려 10만명을 상회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이슬람은 창시자 마호메트가 사후 1세기가 경과되기도 전에 남부 프랑스로부터 스페인,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국경까지 이르렀으며 세계사에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왔다.
▲ 이슬람 태동 초기부터 마호메트에 대한 탄압은 포교 전략상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 정복전쟁 동의어는 ‘포교전쟁’
▲ 이슬람 대확산은 무력에 힘입은바 크다. 이슬람은 전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언자 마호메트가 알라신의 계시와 소명을 받고 메카에서 포교활동에 착수할 직후부터 이내 극도로 탄압 받기 시작하면서 불가피하게 잦은 전쟁을 피해갈 재간이 없었다.
요체는 너무 명백했다. 이전(以前) 기득층 세력들은 다신교 숭배사상에 깊이 빠져있었는데 비해, 코란의 주체되는 알라의 이슬람은 오로지 유일신 사상을 처음부터 한결같이 고수하고 있었기에 양자 간 충돌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그러한 전쟁을 성전(聖戰, 지하드)으로 응당 간주하게 된다. "알라와 최후의 날을 믿지 않는 자들과 싸우라. 그리고 신과 그의 사도가 명령한 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이 공납을 바치고 겸손해질 때까지 싸우라"는 코란의 철칙은 이들에게 있어 지상명령이자 대과업으로 매섭게 다가왔다.
아랍 군대의 정복전쟁이자 동시에 이슬람교도들의 포교전쟁은 매우 현기증 날 정도의 놀라운 속도로 진척되었다. 당시 아랍의 군대는 수적으로는 적지만 낙타나 말을 이용하여 매우 기동성이 높은 기마군대로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사막, 초원을 지나 아르메니아와 이란고원으로 맹렬하게 그 세를 확장시켜갔다.
이들 아랍 군대의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의 전광석화 기동성은 소량의 보급물자에다 약탈해서 빼앗은 것으로 충족할 정도로 자급자족 시스템을 공고하게 유지한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통념적으로 볼 때, 정복 군대의 곤혹스런 딜레마라 할 수 있는 꼬리를 무는 보급 행렬은 그들에게 하등의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아랍인들은 순식간에 북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진출하여 대서양에 연하고 있는 모로코에 이르고,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볼가강 하구에 이르는가 하면, 인도양 해안을 따라 발루치스탄을 거쳐 인더스강에 이르렀다.
특히 마호메트 사후의 이슬람 정복전쟁은 가히 경이적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633~664년 사이 시리아 ·이라크 ·북부 메소포타미아 ·아르메니아 ·이란 ·이집트 등을 속속 정복하기 이른다. 638년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639년 이미 이집트의 국경에 도달한 이슬람 군대는 652년 지중해의 시칠리아 섬 정복에 나섰고, 655년에는 페르시아(1935년까지 이란의 명칭) 정복을 완성했다. 비잔틴 제국의 압박을 받고 있던 하층민들 중의 일부는 이슬람을 해방군으로 맞이했다.
▲ 우마이야 왕조는 정복전쟁을 발판삼아 중동과 북아프리카지역에 이슬람 주춧돌을 놓아
우마이야왕조(Umayyad dynasty, 661~750) 시대에 들어서는 서쪽은 북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까지 그 세를 뻗치게 된다. 우마이야왕조 아랍제국시대에 형성된 이슬람권을 기본 판도로 하여 출범한 아바스왕조(Abbasids, 750~1256) 들어서는 이슬람교가 세계 도처에 뿌리내리게 되는 굳건한 초석을 놓게 된다.
▲ 아바스 왕조는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서부까지 그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이슬람교 글로벌화의 굳건한 뿌리를 내리었다.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스페인)에 상륙한 이슬람 군대는 715년 피레네 산맥을 넘어 유럽 평원으로 질주한 가운데, 동쪽은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서부까지 그 지배력이 미쳤다.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 중추부까지 진출한 파죽지세의 이슬람 군대는 732년 오늘날 프랑스의 ‘프아티에’에서 샤를 마르텔이 이끄는 유럽의 기독교 군대에 패하면서 첫 기세가 꺾였다. 그럼에도 이슬람 군대는 계속해서 아를르와 아비뇽을 손에 넣었다.
826년에는 크레타 섬을 정복하면서 지중해의 해상권 쟁탈을 놓고 기독교 문명권과 진검승부에 착수했다. 한편, 동방에서는 751년 여름 탈라스강(江)의 전투에서 이슬람군은 중국의 당군(唐軍)을 대파하고 중앙아시아의 지배권을 확보하게 된다.
10세기에 들어선 921년 이후 볼가강 중류의 불가르족(族)이, 이어 960년 이래 톈산남북로(天山南北路)의 투르크족(族)이 집단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한편, 동아프리카에는 740년 무렵부터 이슬람교가 발흥되어 1010년경에는 사하라 사막을 넘어 나이저 강변의 서(西) 수단 지방에 있는 흑인 왕국에까지 이슬람의 세력이 미쳤다.
1071년에는 아르메니아의 만지케르트 싸움에서 이슬람 셀주크 투르크군이 기독교의 비잔틴군을 격파하였다. 이때부터 서아시아의 이슬람화 ·투르크화가 개시된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촉발된 것이 11세기 말~13세기 말에 걸친 약 2세기 동안의 십자군 운동이다. 그리고 아바스왕조 이슬람제국의 멸망은 일사 분란한 이슬람세계의 와해와 분열을 초래했으나, 역설적으로 이슬람의 세계적 확산을 낳는 절호의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멸망한 아바스왕조 이슬람제국의 재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 티무르제국(1370~1507)은 비록 존속기간은 짧지만, 파미르고원에서 지중해까지, 볼가강에서 페르시아 만까지 광활한 판도를 구축하면서 이슬람권의 개편과 이슬람문명의 부흥을 시도했다.
한편, 인도에까지 세력을 넓힌 이슬람교도는 이곳을 모기지로 하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방면에 침투하여 동남아시아의 이슬람화가 15~16세기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척되었다.
▽ 아시아의 이슬람 분포도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는 중동 동부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국가는 의외로 중동에서 거리가 먼 인도네시아이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인구는 약 1억3천만명 정도이고, 그 뒤를 파키스탄(7천9백만), 인도(7천3백만), 방글라데시(7천2백만), 터키(5천6백만), 그리고 중앙아시아(5천만) 순이다.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아시아의 이슬람 급신장세를 추적하여 보기로 한다. 동남아 인구의 약 4억 5000만 가운데 전체 인구의 40%인 1억 8천만 명이 이슬람교도이다. 싱가포르에서 4백만 이상의 인구 중 이슬람교도는 전체 인구의 17%에 달한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인구는 약 1억3천만 명, 그 중 87%가 약 1천 개 이상의 도서(島嶼)지역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 인구는 1천8백만 명, 이는 전체 인구의 50%를 점유하는 규모다.
불교 신앙으로 다져진 태국에 이슬람 인구는 1982년에 이미 400만 명에 이르렀다. 이는 태국 전체 인구의 12%에 해당한다. 1982년 필리핀의 이슬람 인구는 비공식 집계로 5,400만 명, 이들은 필리핀 민다나오 섬과 도서 지방 등 13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AD 711년 이슬람이 인도 대륙에 상륙한 이래 1941년에 인도의 이슬람은 인도 인구의 24%를 점유했다. AD 7세기경 이슬람이 정복한 중앙아시아(구소련)의 이슬람 인구는 러시아 정교(5,000만) 다음으로 가장 많은 종교 인구(4,500만~5,000만)를 가지고 있었다.
구소련 해체 후 독립된 중앙아시아의 나라들 가운데 비교적 이슬람교 인구가 많은 나라들은 카자흐스탄(인구의 40%), 키르키즈스탄(60%), 투르크메니스탄(76%),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Tajikistan, 76%), 아제르바이잔(80%) 공화국들이다. 7세기 이래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아온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교가 전체 인구의 99%를 차지한다.
▲ 751년 이슬람군은 탈라스강(江)의 전투에서 중국의 당군(唐軍)을 대파하고 중앙아시아의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중국의 이슬람은 7~13세기에 걸치는 동안 오늘날 중국 북서부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슬람교의 중국 선교는 AD 651년 신해년(辛亥年) 당(唐) 영휘(永徽) 2년에 마호메트 제3대 후계자 ‘우스만(Uthman)’이 특사를 보낸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이후 이슬람은 이슬람 상인들에 의해 돌궐계에게 포교되면서 9세기말부터 본격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어 중국에서 이슬람교가 회교(回敎)의 명칭을 얻게 된 것은 당시 소수 민족 회족(回族)으로서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위구르 족’(Uighrs)에 기인한바 크다.
13세기에 몽골 ‘차카타이 한국(汗國)’의 티무르 왕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후, 16만의 몽골인들이 일시에 이슬람교를 대거 수용하기 이른다. 이후 이슬람의 세력과 영향권은 대폭 확대되었다. 비교적 관용적 종교정책을 취한 몽고제국(원나라를 세움)은 이슬람에 관대했을 뿐만 아니라, 제국 건설의 여러 분야에서 색목인(色目人)으로 대변되는 이슬람인을 중용했다.
그리하여 원(元)제국 치세시 이슬람교가 완전히 정착되고 이슬람 공동체가 여러 곳에 형성됐다. 또한 몽고제국 치하에서 ‘킵착 칸국’을 비롯 동남유럽 일대가 상당한 정도로 이슬람화 했으며, 몽골제국의 동정(東征)을 통해 이슬람이 고려에까지 전파됐다.
중국에서 초기의 이슬람들은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엄격 고수하고 있었지만, 불가피하게 한족(漢族) 사회에 빠르게 동화되어 갔다. 원나라 이후 명(明)나라가 들어서면서 외국어와 이국 문화의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은 물론 외국의 여행까지 제약을 가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유럽에 아랍인들이 해로를 빼앗기면서 이슬람이 중국으로 들어갈 길이 차단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득불 중국의 이슬람들은 한족의 이름과 의복을 위시 음식 관습을 받아들이고 일상 언어로서 중국어를 그 중심에 세우게 된다. 또한 이슬람들은 한족의 여성과 결혼하고 한족의 아이를 입양하며 때로는 한족을 개종시켜서 이슬람의 수를 어떻게든 늘려나갔다.
▽ ‘유럽과 미국’ 이슬람 급신장
▲ 유럽에서 이슬람이 폭증 추세에 현재 이슬람교는 유럽에서 두 번째, 미국에서 세 번째의 종교 서열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유럽의 이슬람 인구는 전체 인구의 3.3%인 정도로서 이들 이슬람은 오스만(Ottoman) 제국 시대에 동부 유럽 지역에 정착한 이슬람을 위시하여 주로 아프리카 서북 이슬람왕국 모로코와 터키에서 서부 유럽으로 이주한 무슬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유럽의 이슬람 주축은 다음과 같다. 독일에서 터키인이 200만명, 모로코 출신이 약 120만명, 터키인은 250만 명, 프랑스에서는 ‘베르베르(Berber)’인과 아랍어를 사용하는 모로코인이 1백만명, 네덜란드에 16만명, 벨기에 수도 벨지움에 15만명, 스페인에 8만명, 그리고 기타 지역에 산재해 있다.
▲ 아프리카 이슬람 신도 수는 2억명에 육박한다. 미국 이슬람 인구는 비공식적으로 약 3백여만 명으로 추산하지만 대부분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주종을 이룬다. 미국에서 이슬람교는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에서 이주자들로부터 유입된 가운데 흑인 사회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더욱이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개종하면서 미국의 이슬람교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미국에서 이슬람교의 최초 기원은 15세기 이탈리아 항해사 콜럼버스와 16세기 신대륙에 상륙한 수천 명의 무어인(Moriscos)에게서 시작된다. 18세기 아프리카의 이슬람 노예들이 그 뒤를 이었고, 19세기 이후부터는 아시아 지역의 이슬람 노무자들이 미국 이민과 함께 미국의 이슬람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55개국 중 이슬람협의회기구(OIC)에 가입된 회원국은 23개국, 이슬람 인구는 2억여명에 달한다.
원본 기사 보기:womansense.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