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는 없는 것’ 진리 재확인
2015.05.14 14:16:00
▲ 드레퓌스와 강기훈씨 /서울의 소리 캡쳐 ©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 없습니다.’
2015년 5월 14일,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씨에 대해 무죄가 확정된 사건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한다.
그것은 또한, 이 시대, 우리를 짓누르는 거대한 거짓에 대한 절규요, 진실한 외침이며, 영원한 진리와 진실이 승리한다는 대명제가 참으로 입증되는 순간인 것이다. 진리가 잘못된사법체계를 이긴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다수의 소수에 대한 폭압을 이겨낸, 진실의 승리는 우리 주변 도처 어느 곳에든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 유서대필 사건= 지난해 2월 서울고법이 무죄 선고한데 이어 대법원이 14일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 강씨에 대한 재심 상고심에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강씨는 1991년 5월 사건이 발생한 지 24년 만이자, 재심을 청구한 지 7년 만에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강씨의 필적과 이 사건 유서의 필적이 동일하다고 판단한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감정 결과는 신빙성이 없어 그대로 믿기 어렵고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강씨가 유서를 대필해 자살을 방조했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본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유서대필 사건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씨가 후배 김기설(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씨에게 분신할 것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신 써준 혐의(자살방조)로 옥살이를 한 것을 말한다.
노태우 정권은 1991년 5월8일 김기설이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분신한 뒤 투신해 숨지자 그 배후로 강씨를 지목, 국과수 필적 분석 결과를 내세우며 그를 구속기소했다.
당시 법원도 유서의 필적은 김씨가 아닌 강씨의 것이라는 국과수 감정 결과를 근거로 강씨의 자살방조 혐의에 대해 유죄라고 판단했다. 또 이적표현물 소지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까지 더해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강씨는 1994년 8월17일 만기출소했다.
김기설씨의 분신사망 후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필해 자살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은 지 24년만이다. 또 2009년 서울고등법원 재심개시결정 이후부터 다시 6년 가까이 지나 무죄 판결이 났다.
24년을 끌어온 유서대필사건은 1991년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씨의 죽음에서 비롯됐다. 강씨가 시위 중 경찰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해 사망하자 전국적으로 정권을 규탄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해 5월8일 오전 6시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했다.
사건 발생 16년 만인 2007년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에 대해 "강씨가 아닌 김씨가 유서를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법원도 재심 개시를 결정했지만 검찰의 재항고와 3년이 넘는 대법원의 장고 끝에 재심은 2012년 10월19일에서야 최종 결정됐다.
재심을 담당한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 김기설이 분신자살을 하며 남긴 유서의 필적이 김기설 본인의 것이 아니라 강씨의 필적이라고 판단한 1991년 국과수의 감정결과는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결국 이날 김창석 대법관이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는 주문을 읽으면서 강씨는 24년 만에 완전히 누명을 벗게 됐다. 주문 낭독 외에 별다른 의견 표명은 없었다.
간암을 앓고 있어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강씨는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강씨 대신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회원 등 20여 명의 시민들이 법정에서 강씨의 무죄 확정 판결을 반기는 모습이었다.
◆ 역사적인 드레퓌스 사건의 교훈= 한편, 드레퓌스사건은 이렇다. 1894년 9월 어느날, 프랑스의 참모본부 정보국은 프랑스 주재 독일 대사관의 우편함에서 훔쳐낸 한 장의 편지를 입수했다. 그 편지의 수취인은 독일대사관 무관이었으며 발신인은 익명이었고, 내용물은 프랑스 육군 기밀문서의 명세서였다.
스파이 활동의 거점인 독일대사관을 감시하는 참모본부는 명세서를 작성한 사람을 찾기 위한 수사를 시작했다. 참모본부의 상관들은 문제의 명세서의 필적이 평범한 유태인 장교인 드레퓌스와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하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첫 군사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드레퓌스.
이후, 프랑스 대문호인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의 무죄와 진실을 묻어 버리려는 사람들을 경고하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소설을 발표하여 진실의 궁극적 승리를 장담하기도 했다.
드레퓌스는 재심에 재심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1906년 최고재판소로부터 무죄선고를 받는다.
창백했던 드레퓌스의 얼굴에 미소가 머금으며 한 말, "프랑스군 만세! 진실 만세! 드레퓌스 만세! 정의 만세!"는 영원한 멘트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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