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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벗! 차 한잔 마시게"

2007.11.01 05:06:00

산사에서 '시'와 함께 '무념무상' 에 빠지다

드디어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곳. 개울 옆 이끼 낀 돌담을 따라 오르면 원효대사가 창건한' 자재암' 이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자재암은 원효대사가 도를 깨우친 곳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사전에 완벽한 산행을 준비한게 아니므로 자재암까지 오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진을 찍으며 절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고, 험준한 코스는 다음으로 예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에 들어서자 오늘 따라 이 많은 등은 무엇일까? 절 마당은 온통 등으로 걸려 있었다. 등과 함께 써붙인 메모에는 경기지역 유지들의 이름이 꽤 담겨 있었다. 수험생의 기원도 간간히 보였다.

등은 머리에 닿을 정도의 높이로 걸려 있었고 키가 큰 사람은 머리를 숙여야 할 듯 했다. 아무렴, 엄숙하고 경건한 절에 왔으니 속세인은 머리를 숙여야 하는 건 당연하지. 등산객 중 일부 신자들은 앞서서 합장하는 모습들 이었다.

ⓒ 홍기인 ▲ "이보게 벗! 차한잔 마시게" 절 마당에 세워진 시가 잠시 걸음을 멈추게 했다.

▲ 오색등, 단청, 그리고 시..." 그대 마음 잠시 접어두고, 이리와 앉으세"

절 입구엔 파전을 뒤집는 처사님도 보였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처사님의 그윽한 미소. 말없이 방문자들을 응시하는 데 영락없이 귀부인의 자태처럼 느껴졌다. 파전을 뒤집던 처사가 마침 그옆을 지나가는 한 스님을 돌아세우며 반기듯 말했다 "스님 부침개 좀 드시면서 일 하세요"

허허허. 지나가는 객은 불러 주지 않는구나. 대신 내 눈을 잡아 끄는 것이 그 뒤에 서 있다. 바로 요넘이네 그려. 시 한편. "이보게~벗! 차한잔 마시게. 그대 바른 마음, 잠시 접어두고 이리와 앉으세.그대 세상살이 고달프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조급하면 한가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네...,"

동굴로 이뤄진 나한전 옆. 그곳엔 수문장 처럼 적당한 크기의 나한상이 버티고 서 있었다. 나한상이 마치 사람들을 보고 경례하는 듯 보였다. " 허허험... 그럼 나두 "필~승!" 근데 그대는 왜 왼손잡이 인고? " 그 오른편은 합격기원 촛불상자가 모셔져 있고, 그 다음이 약수물이 나오는 샘터이다.

주변의 아담한 폭포도 내려다 보고. 약수물도 마시고. 그리고 본격적으로 산행에 오르는 등산객들을 뒤로하며 우리는 다시 내려오길 재촉했다.

ⓒ 홍기인 ▲ 내려오는 길에 만난 간판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올라올 때 몰랐는데 마주치는 또 한편의 시가 있었다. 아무튼 도움되는 '인생헌장' 이면 또 뚫어져라 읽어 봐야지. 아니다, 시간이 없으니 내 카메라로 퍼 담자. 이럴 때 문명의 덕 좀 본다는데 누가 뭐라 하리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 가라 하네"

ⓒ 홍기인 ▲ 단청과 단풍 조금은 어지러운 듯한 표정이 꿈틀대고 있다.

그리고 보이는 단청과 단풍들. 조금은 어지러운 모습이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꿈틀대고 있었다. "어지러운 사바세계, 그러나 잠시 마음 비워두고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져봅시다." 마치 나를 재촉 하듯이

▲ 자재암의 유래 = 원효가 수행정진했던 자재암. 소요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고려중엽 이규보는 "원효가 이곳에 오면서 물이 솟아 올랐다"고 자재암이 원효가 정진하던 곳임을 시로써 밝혀 전해주고 있다. 또 조선 현종조때 미수 허목(학자, 우의정)은 원효대사가 이절을 최초로 지었다는 사실을 그의 "소요산기"에 적었다.

자재암은 그 뒤 고려 광종때와 의종때에 중창되었으나 이 곳을 지나간 숱한 병화에 당우가 재로 변하는 일이 잦아 현재의 절 모습은 1960년대 이후에 들어와서야 자리잡게 된 것이다.

▲ 자재암과 원효의 전설 = 자재암은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심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수행 도중 관세음 보살과 친견, 자애무애의 수행을 쌓았다. 원효의 '전설'을 말해주는 것은 여러군데에서 보여 진다.

자재암에서 처음 계곡을 따라오르면 '청량폭포'가 보이는데 이곳이 '하백운대'이다. 그 오른쪽이 원효가 앉아 고행수도 하였다는 '원효대'가 있다. 여기를 지나 다리를 몇개 건너면 '백운암'이라는 사찰이 나온다. 원효가 원효대에 좌정하고 고행 수도 하였으나 도를 얻지 못해 투신 자살하려는 순간에 이르러 도를 통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의상대 서쪽 봉우리이자 하백운대로 종주 산행을 할 경우 맨 끝 봉우리인 '공주봉'은 요석공주에서 따온 것인 듯 싶다. 요석공주가 기거하던 궁터도 산입구에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져 오고 있다.

▲자재암 주변경관 = 입구 부근 작은 전망대 바위에서 바라보면, 계곡 안이 비좁은데도 지형을 따라 좁은 곳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터를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절 마당의 은행노송과 주변의 단애도 잘 어우러져 있다.

특이한 건 나한전의 전각이다. 자재암 앞으로 암릉이 단애를 이루며 솟아서 막고 , 동서로 트인 형상의 작은 골짜기가 자재암 앞으로 가로 지른다. 서쪽으로 트인 계곡 입구에서 원효대라고 불리는 뾰족한 바위 봉우리와 그 단애 사이에 형성된 아름다운 '원효폭포'가 있다. 그 뒤로 협곡이 뚫려 남북은 협곡이 가로막고 동곡서야(東谷西野)로 동서가 관통하는 형상이다.

나한전은 바로 원효대 바위 아래 안쪽으로 깊숙한 동굴 형태로 되어 있다. 굴 옆에는 석간수가 솟아올라 사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목을 축여주는 샘터이다. 이 샘물은 이규보의 시에서 처럼 7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시원한 물맛을 과객에게 선사하고 있다.

▲자재암 기준 도는데 총 4시간 소요

일반적으로 매표소를 시작으로 자재암 까지라면 무난하게 올 수 있다. 소요산은 마음먹고 온사람이 아니면 대개 자재암 까지만 오르고 내려온다. 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걸어 자재암의 일주문을 지나 자재암까지는 약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자재암까지 길 중간과 자재암 부근에 원효폭포,옥류폭포 등의 폭포가 있어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등산의 맛을 보려면 코스는 자재암 부터가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자재암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가게 되면 길이 매우 험해 진다. 소요산은 봉우리를 따라 능선을 타는 산행인데 하백운대~상백운대~병풍바위~나한대~의상대~공주봉 등을 돌아 내려오는 코스가 많이 이용된다. 총소요 시간은 4시간 정도이다.

ⓒ 홍기인▲ 소요산 등산 안내도

국내명승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소요산'은 정상인 의상대가 해발 587미터이다. 경기도 동두천시 동북방 소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특이하고 봄철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가을 단풍 또한 유별나서 예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진다.

소요산의 유래는 화담 서경덕, 봉래 양사언과 매월당(김시습)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 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하여 대자연의 많은 수림과 자연경관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이 즐겨찾고 있다.

이곳은 원효대사가 고행수도하여 큰 도를 깨친 곳이어서 불교 유적지로도 이름이 높다. 자재암, 원효폭포 등 관광명소가 소재하고 있으며,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어 수도권지역의 일일 관광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산세가 그리 장쾌하거나 웅대하지는 않지만 형상미의 극치를 보이듯 뾰족뾰족한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봉우리를 이루어 놓아 만물상을 연상케하고, 심연의 계곡은 오묘한 정취를 발산한다. 산정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소담스러우면서도 앙증맞은 청량폭포가 있으며 폭포위로 조금만 더 오르면 높이가 10m나 되는 원효폭포가 우렁찬 낙하의 절규를 토하며 시원한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자재암의 일주문 안쪽과 주차장 뒤쪽으로 항시 솟아나는 약수가 있어 물통을 한두개쯤 준비해가도 좋다. 동두천시가 직접관리를 맡아 주변이 청결하고 질서가 있어 보기에 좋다.

홍기인 기자

idaily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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