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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일원장의 족보칼럼] 촌수에 비친 달라진 세상

2008.01.09 01:39:00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과연 뭐일까?

이런저런 것들이 있을 테지만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우선 어린 아이는 엄마가 소중할 것이요 어미는 제 새끼일 것이다. 사람 아닌 동물 역시도 이 이치는 똑같다. 사내아이는 커서 제 눈의 계집을 그릴 것이요 계집 역시 멋진 사내를 그릴 것이니 때가 되면 다들 그런 현상들이 일어난다. 그런 인연들이 무르익어 일가를 이루게 되고 또한 씨앗을 맺어 한 식구를 이루면서 인간의 종족은 유지되는 것이다. 이래서 이러한 가족이 소중함은 틀림없는 일이다. 이중에 하나라도 어그러지면 진한 사연을 낳게 되고 때로는 그 질곡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목숨이 갈리는 설디설운 대목도 펼쳐지는 것이다.

이러한 식구들 사이에 나타나는 모습들은 촌수에 따라 달라진다. 촌수가 영(零)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부사이가 가장 진하게 나타난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찍으면 남이라 듯이 갈라서기라도 한다면 그만 웬수(怨讐)가 되고 만다. 또 만약에 님이 죽는다면 그 길을 따라갈 만큼도 하지 않는가? 부부사이는 촌수로 따지면 굳이 영촌(零寸)이 되겠지만 촌수로는 따지는 법은 아니다. 거기서 낳은 자식인 일촌(一寸)부터 따지는 법이고 촌수의 대상은 아니다. 일촌간은 흔히 천륜의 제일로 여겼다. 이를 범하면 이미 사람이 아닌 짐승이나 굴러다니는 돌로 여겼던 것이다.

속담에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고 부모는 땅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진하기가 부부보다도 더할 것 같지마는 세상사 내리사랑을 나타낸 말일 뿐이다. 예전 부부는 사랑을 기본으로 하기 보다는 가문을 중시하는 데에 비중을 두었기로 부모가 맺어준 대로 사는 여인네들 중에는 억한 심정에 마음을 자식에게 더 쏟기도 하였던 터였다. 부부는 가족을 이루는 기본 틀이었고 한사코 백년해로를 빌었으되 도중에 갈라선다는 것은 인생의 끝장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다음이 이촌(二寸)인 형제자매지간이다. 벌써 한 칸 벌어진 한치 건너 두치 사이다.

그런데 촌수 좀 안답시고 조손(祖孫)간에도 굳이 이촌(二寸) 운운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이촌(二寸)에 해당된다더라도 대수(代數)로 따져야지 촌수로 따질 일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증조와는 촌수가 삼촌(三寸)이 되는데, 그것을 삼촌조(三寸祖)라든가 고조를 사촌조(四寸祖)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삼촌(三寸)인 숙질(叔姪)간이다. 다정하기가 형제보다 더할 때가 많은데, 삼촌이나 고모는 귀엽게만 보이는 조카들에게는 응석을 받아 주는 편이다. 어미만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가 밉살스러울 때도 있어서 어미 곁에서 떼어놀 심사가 작동되기도 한다.

애가 야단이라도 맞으면 할머니가 없는 바에야 바로 옆에 있는 삼촌 고모와는 아삼육이 되어서 때론 우상의 대상이 되기가 쉽다. 제 동무한테 "나는 우리 고모가 젤-로 좋다" 하는 꼬맹이의 말을 떠 올려보라! 그러니 어린 조카에게는 습성이나 인성형성에 한 몫을 하게 된다. 다음이 사촌(四寸) 형제자매간인데 지금은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예전의 삶의 모습은 사촌간도 한 집에서 많이 살았다. 작은며느리를 보면 바로 살림을 내지 않고 몇 년이고 같이 살다가 어느 정도 때를 봐서 살림을 내보내니 그 자녀들은 사촌들끼리 한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기 마련이었다.

촌수만 벌어진 형제이지 지금의 사촌이란 생각과는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몇 대가 한 집에서 단란하게 사는 모습은 주위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요 나라에서도 포상해주는 법이었다. 이렇게 대가족으로 어울려 사는 풍습이 우리네 모습이었다. 그래서 삼촌이 같은 또래일 경우를 보면 숙질간에 바로바로 장가를 들다보니 미처 살림을 나지 못한 처지에는 그 자녀들 역시 오촌(五寸) 간이 됐어도 한집에서 지내기 십상이었다. 그러니 사촌 다음의 오촌숙질(五寸叔姪) 간의 당숙(堂叔) 또는 당고모(堂姑母)란 칭호가 역시 그런 집인 당(堂) 자의 쓰임새가 어울리지 않는가? 여기까지가 한 울타리인 셈이고 그 안에서 살았던 모습이요 생긴 말이다.

요즘에 와선 그런 모습을 얼마나 헤아릴지는 모르겠지만 스무 살 안짝에 혼인들을 하는 예전에는 일흔만 넘겨도 한 집[堂]에서 오촌이 났다. 골육지친간의 온갖 일들아 더도덜도 없이 다 이런 촌수 틀 안에 있다.

이제는 그 골육지친(骨肉之親)의 세계가 또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호적부가 없어지고 가족부가 생겼으니 여기서 가족이라는 낱말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그 흐름을 보면 예전과 지금의 의미는 많이도 달라졌다. 원래 가족(家族)이란 말은 어느 한 가문의 일족(一族)이었지 한 식구라는 뜻은 드물었다. 옛 책을 통해본즉 일족이란 의미에서 차츰 한 집의 식구로 변해왔음이 역력하였다.

그러니까 가족이란 말이 애초에는 동성동본의 일족이나 최소한 동고조 팔촌 안에 드는 집안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한 집 식구란 말로 변해버렸다. 한 집 식구란 말로는 가속(家屬)이란 말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더구나 가족(家族)이란 낱말은 일제에 의해 한 집의 식구란 뜻으로 더 심화된 낱말이었다.[일어

홍재희 기자

idaily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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