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원장 미술치료 칼럼]
2008.08.19 05:05:00
- 미술교육 vs 미술치료
- 무엇이 다르며 왜 필요한가?
미술교육과 미술치료는 대상에게 접근하는 목적이 다르다. 미술교육은 학생에게 미술에 대한 이론적 지식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기법을 가르치고, 그러한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비해 미술치료는 표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즉 표현을 통해 정서적으로 안정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표현을 통해 자신의 마음 속 숨겨진 부분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며, 표현을 통해 인간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창조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을 더 잘 그려서 내가 원하는 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한다면 그것도 좋다. 매체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표현하는 것을 나타내는 데 보다 효율적인 매체를 사용하는 것 역시 좋다. 그림을 멋들어지게 잘 그려서 그것을 통해 성취감을 느낀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치료적 효과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능수능란하게 그리지 못하는 것이 치료에 방해의 방해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미술교육이 미술에 대해 ‘잘’ 알고, ‘잘’ 표현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면, 미술치료는 그러한 교육적 배경이 있든 없든 간에 미술매체를 이용한 표현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심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미술교육과 미술치료를 이끄는 교육자와 치료자의 역할도 달라진다. 미술교육을 하는 교육자(미술선생님)에게는 학생이 미술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에 활용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반면 미술치료를 하는 치료사는 내담자(상담/치료를 받는 사람)가 원하는 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고, 표현하려는 내용을 이해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실상 내담자가 만들어낸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는 것 또한 치료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재료와 주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내담자의 개인적인 특성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작업과정에서 치료자가 편안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기본이다.
- 아동정서발달의 측면에서 본 미술활동의 의미
- 일종의 놀이이자 자기표현의 수단. 상징적, 비언어적, 무의식적 표현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보다 자유롭게 내면상황을 드러내 보여준다.
미술은 아동에게 일종의 놀이이자 자기표현의 수단이 된다. 미술치료실에서 일어나는 미술활동이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앉아서 도화지를 놓고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치료자가 내담 아동에게 주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그리게 한 뒤 결과물을 해석할 수 있지만, 그것은 미술치료의 커다란 영역 중 한 부분일 뿐이다. 내담 아동의 성격과 문제를 짚어내는 것은 치료를 위한 기본적 도구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치료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팔이 부러졌을 때 병원에서 방사선 촬영을 하게 되면 골절의 정확한 부위와 정도를 파악할 수 있어서 그 뒤에 이어지는 치료에 유용한 자료가 되지만, 방사선 촬영 자체로 골절이 치료되지 않는 것과 흡사한 이치이다. 아동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자율성이 확보된 (자기)표현이 필요하다.
엄마 뱃속에서 작은 씨앗처럼 잉태된 아기가 세상 밖으로 태어나 키가 커지고 기고 서고 걷는 등의 움직임을 익혀나가는 것을 신체적 발달 혹은 성장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의 마음도 그와 비슷한 모습으로 커 나가게 되는데, 그것을 정서발달이라고 한다. 우리의 몸은 적당한 시기(나이)가 되면 순차적으로 정해진 발달과정을 거치게 된다. 때가 되면 몸을 뒤집고, 다시 때가 되면 일어나 앉고, 조금 더 지나면 걷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 혹은 정서가 발달하는 데도 이러한 순서가 있다. 어머니(또는 주 양육 대상)와의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어야 심리적 독립이 가능하다. 이것은 신체발달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 때가 되었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심리적 발달을 위해서는 아동의 발달단계에 맞는 놀이가 필요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아이들의 놀이 패턴이 유사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은 그 놀이가 아동의 정서발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벽돌을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든 최첨단 장난감을 이용해 국수를 뽑든, 음식 만들기 놀이를 하고 있고, 소꿉놀이가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시대가 바뀌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정서발달단계에 필요한 놀이를 충분히 하지 못하는 데 있다.
- 잘 그린 그림보다는 새로운 그림, 재미있는 그림이 중요하다.
놀이가 정서발달에 도움을 주는 데는 여러 측면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창조성’이다. 놀이의 내용을 만들어내고 끌어가는 것은 아동 자신이다. 놀이에는 아동의 내면 발달이 그대로 투사되기 때문에, 어떤 지침에 따라 놀이가 변화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아동 스스로 그 변화를 주도하게 된다.
한참동안 공룡만 가지고 놀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공룡보다는 사자나 호랑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거나, 자동차 놀이를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미술이 가진 힘이 나오게 된다. 흔히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이미 형태를 가진 것, 이미 만들어진 것이지만, 미술은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 내는 활동이라는 점에 그 놀라운 가치가 있다. 즉 이미 있는 것을 가지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 대상 자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술을 통해서는 앞서 말한 창조성이 그 빛을 더 발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생각해 본다면 아이들이 그리는 낙서같은 그림,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보잘것 없는 조형물 중에 사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설령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주제를 수십 장씩 반복해서 그린다 하더라도 그 작품 하나하나가 그것을 그리고 만들어낸 아이에게는 의미있는 창조물이 되는 것이다.
미술매체는 매우 광범위하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크레파스나 물감, 색연필, 점토, 색종이, 풀, 가위 뿐만 아니라 밀가루, 색모래, 면도용 크림 등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매체는 미술매체가 될 수 있다. 현대의 화가들이 기발한 소재를 이용하여 작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미술활동의 매체는 무궁무진하다. 그 많은 매체들 가운데 아이들의 정서단계에 보다 적절한 것이 있을 수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딱딱한 재료보다는 부드럽고 유연한 재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이에 따라, 정서발달단계에 따라, 혹은 그 아이의 심리적 상태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미술이 가진 힘이다.
이런 배경지식을 가지고 이해한다면 왜 아이들에게 잘 그린 그림보다 새롭고 재미있는 그림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서발달에 필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창조력이기 때문이다.
- 그리는 방법, 노는 방법.
- 노는 데 맞고 틀리는 것은 없지만 잘 노느냐 못 노느냐는 있다.
지금까지 놀이와 표현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실제로 어머니들을 만나보면 모두들 자녀들이 하나같이 너무 놀아서 걱정을 하시지, 안 놀아서 걱정하시는 분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머니들이 보기에 자녀가 학원에 가거나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노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논다고 다 똑같은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노는 데 맞고 틀리는 것은 없지만, 잘 노느냐, 못 노느냐는 실제로 큰 차이가 있다.
여기서 잘 노는 것이란 그 아동의 정서발달에 필요한 놀이를 하는 것을 말한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 갈수록 아이들의 성적이 더 높아진다. 그것이 아이들의 지적능력이 향상되어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점점 더 잘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성적은 가르쳐서 좋은 선생님이 좋은 교수방식으로 올려줄 수 있으나 놀이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영유아기부터 수동적인 학습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은 자기 내면의 요구와 필요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덜 발달되기 쉽다. 이런 아이들에게 게임이 유혹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게임에는 정해진 룰과 틀이 있어서 그것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스스로 새로운 것을 생각해낼 필요가 그만큼 적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아이들에게 신경 써 주어야 할 부분은 자기에게 필요한 놀이를 잘 놀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술은 놀잇감을 가지고 하는 놀이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결국 어떤 측면에서 미술이란 표현이 용이한 미술매체를 가지고 행하는 놀이활동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심리치료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 부모로서의 역할에 중심이 서지 않을 때는 주저 없이 전문가와 상담할 것을 권한다.
아동이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많은 경우 그것은 오랜 시간 축적되어 있다가 마침내 나타나게 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 날 갑자기 너무 충격적인 사건을 겪게 되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미 힘들어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일 정도라면 아이의 마음속에 아픔이 가득 차있기 때문에 넘쳐 나와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내가 지금 많이 힘드니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지는 아이에 따라서 다르다.
가장 빈번한 것은 또래관계에서의 어려움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지, 어떤 친구들과 주로 어울리는지, 동갑내기 친구와 어울리는지, 아니면 나이가 다른 형이나 동생들과 주로 어울리는지 모두 살펴보아야 할 것들이다. 요사이 흔히 나타나는 산만함도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정서적 어려움에 원인이 있을 수 있다.
그밖에도 눈치를 많이 살핀다거나, 나이에 걸맞지 않게 조숙하다거나, 습관처럼 거짓말을 하는 등의 모습도 우리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때가 되면 자연히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고 미루는 경우가 많지만, 앞에서도 설명했든 정서발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조심스럽게 판단해야 한다. 그동안 정서적 어려움을 만들어낸 원인이 있어왔는데, 그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면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도 갑자기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채, 단지 지금이 불편과 부담을 피하기 위해 미룬다는 사실이다.
분명 심리치료는 만능통치약이 아니다. 아이의 모든 문제를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든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리치료는 그저 마음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지금보다 조금 더 강한 외부자극을 받게 되더라도 좀 덜 힘들어하고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심리치료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동에게는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편안하고 안전한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고, 부모에게는 성인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의 표현을 중간에서 통역해주고, 거기에 대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부모가 부모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 알 수 없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심리치료사가 하는 것이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도록 도와주고 싶은데 부모가 가르칠 여력이 안 될 때 전문학원선생님이나 과외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아이의 마음이 튼튼해지도록 도와주고 싶을 때 힘을 빌릴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한다면 치료라는 말에서 오는 위화감으로 인해 자녀를 힘든 상태에 방치하는 경우가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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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연구소 공감 김유정 대표]
▶ 미술치료연구소 공감 대표 미술치료사
▶ 한국표현예술심리치료협회 1급 치료사
▶ 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아동심리치료학과 석사
문의 : 02-6242-4680 www.gonggam.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