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보석상자처럼 간직하고 싶은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2013.03.19 15:47:00
▲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서울=더데일리뉴스) 옛것에 취하게 하는 책 냄새, 고전 문학과 영화 사이에서 즐기는 묘한 즐거움, 창문 넘어 비쳐오는 한줄기 햇살 그리고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젊음...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를 처음 만났을 때 떠오르는 수많은 이미지와 감각들은 어딘가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오랜만에 가슴에 품고 돌아가는 연극을 만난 기분이다.
3월 한 달 동안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무대 위에 오르는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The History Boys)’는 1980년대 초반 영국 북부지방 한 공립 고등학교 대학입시 준비반을 배경으로 한다. ‘옥스브리지(옥스포드+캠브리지)’에 입학하기 위해 학업에 정진하는 학생들. 그들을 가르치는 한 명의 문학 선생님과 또 다른 역사 선생님 사이에서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데 그 둘의 줄다리기 위에서 학생들은 흥미진진한 장난감을 만난 듯 재미를 느낀다.
언뜻 이 작품이 풍기는 분위기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상시킨다. 영화와 비슷하게 이 연극에서도 푸근한 이미지의 문학 선생님이 등장한다. 그는 학생들과 교실에서 일탈을 꿈꾸고 농담을 던지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카르페디엠’의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의 수업 모습은 ‘카르페디엠(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 그 자체이다.
그들의 문학 시간은 ‘교실 문을 잠금으로써’ 모든 것과 차단된 비밀 아지트로 변신한다. 학생들은 문을 잠그는 이유를 “방해받기 싫고”, “현대성(Modernity)의 망령이 들어오지 못하게”, “진보의 동력이 밀고 들어오지 못하게”, “미래에 대해 닫혀있는”, “좀도둑의 나라”인 그들의 공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문학 교사 ‘헥터’에 의해 시작된 일(교실 문을 잠그는 일)이지만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헥터’의 행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문학 교사 ‘헥터’는 학생들이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 학교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매달리는 것도 싫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학교의 명성을 위해 모범생들을 더 훈련시켜 ‘옥스브리지’로 진학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현실로 만들어 줄 신참 교사를 소개하는데 바로 역사 교사 ‘어윈’이다.
‘어윈’은 현실적인 교사였다. 문학교사 ‘헥터’의 수업이 “시간낭비”하는 교양 수업이었다면 역사 교사 ‘어윈’의 수업은 학생들을 예쁘게 “포장”해 주는 수업이었다. ‘어윈’은 이 학교 학생들이 다른 학교 경쟁자들과 입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명문대학 입학 심사위원들을 “넘어가게 할” 기존의 생각을 뒤엎는 독창적인 생각과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완전히 다른 ‘어윈’과 ‘헥터’의 교수법 사이에서 학생들은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꽤 쏠쏠한 즐거움도 얻어가며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교사에게 신과 같은 존재나 영웅같이 우러러 보는 위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들은 고뇌와 정체성의 혼란으로 끝없이 일탈하는 연약한 존재로도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명문대 입학을 위해 이성적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약간의 장난스러움과 문학의 즐거움도 아는 여유까지 있다.
165분 정도 진행되는 이 연극은 지루함 없이 지나간다. 그 만큼 캐릭터의 성격이 생동감 넘치고 등장인물들 사이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과 그것이 유발하는 복잡한 감정들이 신선하다. 이 신선함은 작품 속에 ‘동성애’ 코드를 넣음으로써 더욱 강하게 전달되는데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거침없이 작품 속에서 드러난다. 이 모든 것들은 불편함 없이 즐거움과 진지함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을 이루어 나간다. 이 작품만이 가질 수 있는 개성인 것이다.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프로메테우스 신화, 디오니소스 신화, 헤르메스 신화 등 풍성한 상징들로 가득차 있는 듯하다. 명문 대학 진학을 위한 근대적 교육 시스템은 인간에게 불, 즉 기술을 전해 준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연결된다. 반면에 문을 잠그는 행위를 통해 교실은 순식간에 원초적인 본능이 살아 숨 쉬는 디오니소스의 신화 속으로 흡수된다. 그리고 학생들은 두 신화의 상징들 사이에서 균형 잡힌 소통을 해 나가며 그들 자체가 헤르메스 신의 모습을 띈다.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이미 토니어워즈 작품상 등 6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최고의 수작이기도 하다. 국내 초연으로 더 주목받고 있는 이 공연은 ‘죽은 시인의 사회’의 향수에 젖은 사람들에게 또 한편 평생 간직하고 싶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태형’ 연출의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3월 31일(일요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진행되며 평일 8시 / 토요일 3시, 7시 / 일요일 2시, 6시에 공연된다.
자세한 공연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http://www.doosanartcenter.com/) 참조.
조재희기자 The dailynews232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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