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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의미 상실과 고통의 문제를 다룬 연극

2013.04.15 11:24:00

‘레프 도진’ 연출과 ‘말리 극장’ 배우들이 선 보인 최고의 무대

(서울=더데일리뉴스) 인간은 “자신이 뿜어낸 의미의 그물 가운데 고정되어 있는 거미와 같은 존재”이다. 그물이 끊어지는 순간 거미가 추락하듯 의미를 상실한 인간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상실은 고통을 수반하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살아가는 의미를 뿜어낸다. 그것이 비록 언제 끊어질지 모를 가느다란 거미줄일지라도 고통은 어떻게든 피해야만 하니까.

“의미 부여-상실-고통-다시 의미 부여”라는 쳇바퀴 같은 인생을 이야기하는 연극이 있다. 바로 19세기 러시아의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 겸 극작가 ‘안톤 체홉’의 <세 자매>이다. 이 작품은 고향인 모스크바를 동경하는 어느 지방의 세 자매와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물들의 여러 색깔의 사랑과 삶에 대한 희망, 좌절, 슬픔을 비극과 희극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이 러시아의 거장 연출가 ‘레프 도진(Lev Dodin)’을 만나 원작과 또 다른 색깔의 <세 자매>로 태어났다. 말리 극장의 <세 자매(2013)>는 4월 10일부터 12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무대 위에 올랐다. 이번 공연은 ‘레프 도진’이 이끄는 ‘말리 극장’의 4번째 내한공연으로 2010년 <바냐 아저씨> 이후 두 번째 선보이는 체홉의 작품이다.

<세 자매>에는 현재 삶에 큰 기쁨이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세 명의 자매가 등장한다. 언제나 ‘모스크바’에 대한 강렬한 열망만이 그녀들의 삶을 지탱해 줄 뿐이다. 곧 그 곳(모스크바)으로 떠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현재의 의미를 찾는 그녀들. 마치 종교가 천국과 지옥을 말하듯 그녀들에게 모스크바는 천국이고, 현재 사는 곳은 지옥이나 다름없다.

특히 세 자매 중 셋째 딸 ‘이리나’는 천국 ‘모스크바’에 대한 열망이 가장 큰 여자이다. ‘젊음’과 ‘아름다움’의 상징처럼 뭇 남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그녀이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않다. 어느 누구도 그녀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 수록 영원할 것 같았던 그녀의 젊음과 아름다움도 점차 사라져가고, 모스크바로 떠날 수 있는 기회도 사라져가는 현실에 그녀는 고통스러워한다.

둘째 딸 ‘마샤’는 의미가 상실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존재이다. 갑자기 혼자 흥에 취해 소리내 웃는 마샤, 갑자기 팽이처럼 빙빙 춤을 추는 마샤, 알 수 없는 시를 내뱉는 마샤, 자꾸만 말이 꼬이고 혼란스러워 하는 마샤. 그녀가 묻는다. “그래도, 의미는 있겠죠?” 그녀가 답한다.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그녀는 맥락에 관계없는 말과 행동으로 극의 흐름에 균열을 일으킨다.

첫째 딸 ‘올가’는 가장 차분하다. 모든 것을 관망하듯, 체념한 듯 사물과 사람을 관찰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대화에 끼어들어 상황을 정리하기도 하고, 흔들리는 두 여동생의 마음을 추스려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도 동생들처럼 현실에 불만족하고 괴로워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녀들에게 인생이란 ‘설명 불가능한 사건의 종합체’,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응축’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좌절 대신 ‘노동, 사랑, 모스크바’에 환상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들(노동, 사랑, 모스크바)은 현실의 난해함, 이상함, 섬뜩함의 느낌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다. 이로써 그녀들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다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천년이 지나도 인간은 탄식할 겁니다. <아,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그러면서도 지금처럼 두려워하며 죽음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이리나’를 사랑한 ‘뚜젠바흐’ 남작의 이 말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말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라는 그의 말은 <세 자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지는 공통의 세계관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고, 무엇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지... 그걸 알 수 있다면, 그걸 알 수 있다면!” 그녀들의 간절한 기도처럼 어쩌면 인간은 고통의 의미와 이유를 찾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만든다.

지난 4월 10일(수)부터 12일(금)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세 자매>는 무겁지만 감내해야만 하는 인생을 희극과 비극의 절묘한 조화로 풀어냈다. ‘레프 도진’ 연출과 ‘말리 극장’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만날 수 있었던 이번 공연은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자세한 공연내용은 공식홈페이지(http://www.lgart.com) 참조

조재희기자 The dailynews232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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