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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지 프리뷰] 연극의 원형, 제의를 무대로 복원시킨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

2014.06.07 15:35:00

오랜만에 관객과 만나는 극단 자유의 웰메이드 연극, 고대의 사랑을 노래하다

(서울=더데일리뉴스) 한 시대의 존망(存亡)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나약한 인간은 초월적인 신의 힘을 빌어 생과 사를 기원했을 것이며, 그것들은 유구한 세월 동안 의례, 굿의 형식으로 이어져 왔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삶의 깊숙이 뿌리내렸던 그 제의(ritual)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지만 여전히 그것의 정신을 이어 오는 것은 단연코 연극 무대일 것이다.

코미디, 멜로, 스릴러 등 순간의 쾌락을 위한 연극이 우리에게 익숙해진 가운데, 연극의 원형을 회복시키려는 노장들의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오랜만에 관객과 만나는 극단 자유(自由)의 연극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라는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이 연극은 고대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나라의 존속과 멸망 사이에서 위태로워진 공주와 왕자의 사랑을 노래한다. 두 남녀는 본래 혼인을 약속하였으나, 두 사람의 나라가 뜻하지 않은 전쟁에 휘말리면서 서로를 죽이고 죽어야 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주인공 공주는 패망한 자국의 혼령들(부모, 백성)을 위해서 제의를 올리고, 자기 자신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남은 백성들과 함께 하기 위해 피신을 거부한다. 그녀가 목숨을 건 굿판을 벌이는 가운데, 그 순간 굿판에 숨어든 누군가가 쏜 화살에 공주는 죽고 만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벌어지고, 그 모습을 지켜본 왕자는 주체할 수 없는 비극에서 절망한다.

이처럼 주인공 두 남녀의 비극적 사랑은 시대의 존망과 연결되면서 삶과 죽음의 노래로 확장된다. 특히 이 연극은 무굿과 영상을 혼합한 퍼포먼스로 구성되어 우리의 무속신앙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다. 무굿은 무악의 반주에 따라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제의를 진행하는 굿의 형태이다.

한편, 지난 6월 5일 오후 대학로예술극장 지하 연습실에서 극단 자유는 본 작품의 연습 현장을 공개했다. 연기하는 배우들의 몸짓은 시대를 수천 년 전의 어느 굿판으로 시공간을 옮겨 놓았고, 실제 영혼을 달래는 의식을 치루듯이 신성하고 차분하게 연습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작가 김정옥, 연출 최치림과 연극계의 원로 박정자, 박웅, 오영수, 권병길 등이 함께 했다.

이 작품의 각본을 맡은 김정옥은 배우들의 연습 장면을 보면서 특히 ‘공주’의 연기에 관해 의견을 내비쳤다. 그는 여배우가 작품 속 공주를 연기함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지도를 해주었다. 그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공주는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녀는 보통의 공주가 아니다. 나라가 망하고, 부모가 모두 죽었고, 그 곳에 남아서 굿판을 벌이는 여자이기 때문에 보통의 여자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공주는 보통여자로 연기한다. 보통여자가 아니어야 한다. 나는 이 작품의 왕자와 공주가 일상적인 두 남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둘은 초인적이다. 천년 전, 이천 년 전의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극 드라마의 말투가 아니라 배우들 자신만의 연기를 창조해야 한다.”

이 말에 덧붙여서 그는 “나는 공주의 몸짓이 빳빳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여자가 굿판을 벌이는 이유가 왕자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겠지만 그것조차도 표현할 수 없었던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던 것이다.”

그가 배우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작품 속 두 주인공만큼은 ‘현실을 초월한 위치의 존재’라는 점을 명심하라는 말이었다. 굿판이 벌어지는 시공간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고, 신과 직접 대면하는 초월적 시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굿을 하는 공주는 자신의 비극을 슬픔, 연약함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도 넘어선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극작가의 의견에 연출은 어떻게 이 작품을 해석하고 있었을까? 연출 최치림은 연습 장면이 끝나고서 다음과 같이 작품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 작품은 무속, 영상, 드라마가 혼합된 퍼포먼스이다. 나는 공주와 왕자의 동화 같은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고자 했다.” 그의 말처럼 연출 최치림은 이 작품을 무속신앙을 바탕으로 한 죽음과 같은 사랑을 그리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생각하는 공주의 연기는 더 아련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작가와 연출가 사이의 이견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연습실 전체에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한 연대를 추정하기 어려운 극의 시공간이 주는 신비로움과 여러 가지 사령제(死靈祭)로 구성된 이야기 전개 방식이 가져온 예술의 힘이었다.

이처럼 연극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는 한국적인 아름다운 사랑과 죽음을 굿, 영상, 조명, 음악, 음향 그리고 배우들의 몸짓을 통해서 표현한다. 그리고 그림자극과 입체적 영상을 배우들의 연기와 조화시키면서 강한 이미지를 뿜어내는 연극이기도 하다.

연극의 원형, 제의의 순수한 기능을 객석에 앉은 관객들까지도 체험할 수 있게 한 이 연극은 2014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6회 씨어터올림픽스 초청작으로 작품성과 대중성까지 인정받았다. 씨어터올림픽스는 세계적인 공연예술가, 평론가, 예술행정가, 학자들로 구성된 국제연극제로 14개국 14인의 국제위원이 소속되어 그리스 아테네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공연 예술 축제이다.

본 작품은 오는 6월 12일부터 18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으며 출연진으로는 채진희, 정재연, 홍지우, 변주현 / 박웅, 오영수, 권병길 / 염철호, 박민관, 백종오, 남기오, 김수환 / 조이경, 남국현 / 강신혜, 김유민, 신혜옥 / (특별출연) 양용은, 박성훈, 이준희, 배대영이 출연한다. 티켓은 R석 50,000원 S석 30,000원 A석 20,000원이며, 자세한 공연 정보는 공식블로그(http://blog.naver.com/2014_flower) 참조

조재희기자 The dailynews232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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