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옛 것을 잃고 새 것을 얻은 연극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
2014.06.16 13:47:00
(서울=더데일리뉴스) 극단 자유의 157번째 작품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가 연극 애호가들의 관심과 기대 속에서 막을 올렸다. 극단 자유는 1966년 이병복, 김정옥에 의해 창단되어 현재까지 쉼 없이 달려온 한국 연극 역사의 산 증인이다.
김정옥(82) 작/연출의 연극 ‘화수목 나루’가 원작인 이 작품은 14년이 흐른 지금, 최치림(70)의 연출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연극계의 원로인 두 명장(名匠)이 함께 만든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는 과연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들과 제대로 소통할까?
이 연극은 고대 한반도를 배경으로 전쟁에 승리한 대국의 왕자와 패망한 소국의 공주 사이의 ‘운명적 사랑’을 그린다. 또한 이 작품은 나라를 잃은 백성과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민초를 향한 공주의 끝 없는 사랑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 공주는 전쟁으로 인해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은 도망자 신세가 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망혼을 달래는 제의를 올린다. 그 제의는 죽은 자의 넋을 기림과 동시에 새 시대를 여는 시작과도 같다. 자국의 멸망과 적국의 통일이라는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서 그녀는 이승/저승, 적/아의 구분을 뛰어넘는 ‘초월적 사랑’을 보여준다.
최치림 연출은 이 작품에서 공주의 ‘운명적 사랑’과 ‘초월적 사랑’ 중에 전자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연출의 글에서 최치림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공주와 왕자의 ‘운명적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 중략 … 작품의 시적이고 은유적인 사랑의 이미지를 어떻게 극적 표현으로 전환할 것인가 … 중략 … 사랑의 속성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언어적 설명보다 영상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 작품은 공주와 왕자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무대 장치들로 구성되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공주와 왕자의 사랑을 잘 표현하고 있는가? 연극의 첫 장면부터 살펴보자. 여러 겹으로 된 스크린에 꽃이 휘날리고 아름다운 시(詩)가 관객이 읽기 좋은 속도로 자막으로 투영된다. “사랑은 봄날 꽃처럼 피네 / 아름다운 색깔과 향기를 내뿜으면서 / 사랑은 여름날의 훈풍처럼 불어오네 / 나른함과 아련함을 불러일으키면서… / 사랑은 가을날의 낙엽처럼 떨어지네 / 고독과 그리움을 흩날리면서 / 사랑은 겨울날의 눈처럼 내리네 / 순수함과 아픔으로 대지를 덮으면서… / 사랑은 꽃이고 물이고 바람이어라.”
작품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사랑의 사계절’ 시(詩)를 비롯해서 다양한 영상(총천연색 꽃, 깊은 숲 속의 폭포,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새색시의 모습 등)이 주요 장면에서 스크린에 투영되고, 그것들이 한데 모이면서 이 작품만의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 낸다. 최치림 연출은 화려한 영상 이미지를 통해서 그만의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를 완성시키고자 했다.
최치림 연출은 이 작품을 해석하고 표현할 때 ‘공주와 왕자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사랑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영상의 활용’에 많은 관심을 가진 듯 하다. 그는 연출의 글에서 영상 활용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공연의 큰 관심사 중의 하나가 동시대적 표현”이기 때문에 “영상을 도입”하는 것은 “현대적 감각을 수용”하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공주와 왕자의 회상들을 표현하는데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즉, 이 작품은 순수하게 공주와 왕자의 운명적 사랑을 표현하는데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제의 장면’이다. 이 연극은 굿에서 굿으로 이어지는 한 편의 제의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커다란 제의 속에 공주, 왕자의 이야기가 들어간 것처럼, 이 연극은 오히려 ‘굿’이 작품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 작품의 초점이 ‘운명적 사랑’보다는 ‘초월적 사랑’으로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과 아쉬움을 느꼈다.
이 작품의 중요한 사건은 바로 ‘전쟁’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수 많은 백성의 목숨을 앗아가고, 태평성대 했던 한 시대의 존망(存亡)을 잔인하게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제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 쓰이는 ‘씻김굿’은 사람이 죽었을 때 하는 굿으로 망자의 한을 풀고, 넋을 기리는 굿이다. 그러나 최치림의 연출에서는 이러한 제의적 표현이 충실하게 다뤄졌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사실 굿을 표현하는 도구들은 무대 위에 충분히 갖춰졌다.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의 실감나는 노래도 인상 깊었다. 그러나 왜 그 굿이 이 연극에서 ‘주변적 기능’으로 ‘전락’해 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인가? 제사장도 있고, 쑥물도 있고, 향물도 있는데 왜 굿판이 굿판 같지 않았던 것일까?
필자는 그 이유가 무대 위 굿판이 ‘도구’로만 존재하고 그 ‘본질’을 잃었기 때문이라 본다. 즉, 무대에서 그 어떤 신성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 굿판의 모습은 모사처럼 보였고, 굿의 시늉만 내는 듯한 느낌은 이 작품의 정신을 흔들어 놓은 듯 했다. 상당 수의 장면이 제를 올리는 장면인데, 그것은 온전히 표현되지 못하였고, ‘총체연극’을 지향했던 이 작품은 ‘총체적 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고대 한반도 어느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굿판의 신성함을 전달하지 못했고, 총천연색의 영상 이미지는 작품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았다. 또한 배우들은 저 마다 자기 소리를 내기에 바빴으며 그들의 에너지는 한데 모여지지 못했다.
이 시점에서 최치림 연출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이번 작품은 오페라 또는 콘서트 같은 작품이다. … 중략 … 세계무대에서 한국적인 감성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그의 말처럼 이 연극은 ‘오페라’, ‘콘서트’, ‘한국적 감성,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올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6회 씨어터올림픽스에 초청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혹시 이 작품이 제작된 의도가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 제작된 것은 아닌가? 그래서 원작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을 만큼 화려한 영상 이미지와 한국 전통 굿을 혼합해 놓은 것은 아닌가? 물론 ‘디지털-아날로그’, ‘현대-전통’의 창조적인 통합이 이루어졌다면 이러한 아쉬움도 남지 않았을 텐데 그 통합이 흐름을 낳지 못하고 산만하게 퍼져버린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이 작품은 분명 ‘순수하다’. 상업적인 공연에서 볼만한 자극적인 이야기 전개나 놀라운 반전 없이 인간의 사랑, 죽음, 삶을 순수하게 풀어 나가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최치림 연출과 김정옥 작가의 명장들이 해낼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다만 관객의 입장에서 원로들에게 기대했던 연극의 진수를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4개월 후, 씨어터올림픽에서 선보여질 이 작품이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지,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을지 기대 해 본다. 본 작품은 오는18일(수요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며, 자세한 공연 정보는 공식블로그(http://blog.naver.com/2014_flower) 참조
조재희기자 The dailynews232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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