癸巳年 새해 아침
2013.01.02 15:15:00

▲ 김지원 논설주간 흐르던 바람도 미동을 접고 그 흔한 박새 한 마리 날지 않는 미명의 아침이다. 하늘과 바다가 일시에 숨을 멎고 이내 선명한 선을 긋는다. 미리 차려진 향연인 듯 흥건히 번지는 빛의 군무 사이로 양수(陽數)도 채 다 털어내지 못하고 둥그런 알 하나 툭 불거져 오르는데 바로 癸巳年 새해의 출발이다.
시작이란 과거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허수의 시간과 현재 사이에서 무지한 광대들의 억지 놀이이지만 그래도 시작이라니 겨우 남은 허리띠 한 칸 졸라 매어보는데, 미처 여미지 못한 가슴이 휑하니 뚫린다. 지난 세월 차마 잊지 못하는 쥐왕(?)의 광대 춤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부질없는 땅 헤집기 놀이에 속절없이 놀아난 헐벗은 민초들 몰골에 아직도 빛을 담지 못했다. 희미해지던 태양빛에 다시 쇠기름 붓고 잦아들 날 없었던 세찬 칼바람을, 새해에는 고달프게 살아오며 금이 가버린 메마른 등짝으로 막아서 보리라.
행여, 그러다보면 희망의 꽃을 불사르는 봄도, 장대비에 훌훌 터는 여름도, 풍요를 찬미하는 가을도, 축복의 눈으로 감싸는 겨울도 그때처럼 다시 오지 않겠는가. 에라! 가자, 꽃길 따라 가자, 마음속 화폭에 푸른 꽃대궁 올리고 애틋한 마음 달래가며 꽃 한 송이 다시 피워 올리며 물길 따라 가자.
맑은 옹달샘에서 솟아오르는 생명 줄기를 향해 떠나보자, 또 움직이는 마음자리 살피며 고요한 숲의 잠은 깨우지 말고, 제 속에서 깊어지는 소리를 여는 넓은 바다를 향해 가자.
욕심 없이 비우고 민초들 소망 담는 새 임금이기를.
책상위에 놓인 마지막 달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흘러간 시간들을 아쉬움으로 채우며 또 하나의 성상을 쌓았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혹은 남들이 바보 같다고 놀려도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 지으며 여유로운 한해를 살고 싶었다.
하루하루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렇게 또 나이테만 늘리고,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삶의 언저리에서 튕겨져 나갈까 맘 졸이며 사는 게 싫었던 한해다.
새해에는 조금 모자라도 아무 욕심 없이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 것인가? 유사이래 하늘에서 여왕이 납시었으니 마음에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흐르고, 방방곡곡이 언제나 평화롭고 슬기로운 호흡소리로 가득 채워진다면 지난 5년 암흑을 살았다고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하지만 이 아둔한 필자는,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었고 죽었으면서도 살아 있었다.
쥐왕이여!
민초들 굶주림으로 아우성이 극에 달한데도, 5년을 두더지처럼 땅만 파헤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몽매한 백성들의 눈가린 광대놀이에 니 땅, 내땅 갈라서 박수를 보내니 박복한 민초들이 아니던가? 그래, 주어진 복이라면 그대로 살거라. 여왕님 치맛자락 땅에 닿을세라 비단길 깔아 주고 만복 누리며 잘 살거라.
그래도 필자는 이렇게 외친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성스러운 존재와 모든 이웃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일구면서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하지만 정직하게 삶을 돌아보면 부끄럼 없이 떠올리지 못한 날들이 많았고 후회스러운 일들도 많았다. 그러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지금의 모습으로 새해를 숨 쉰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인간이 해탈을 하지 않는 한 완벽하게 기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기로 하자.
인생의 큰 흐름이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차 있다면 얼마간의 슬픔과 우울함 따위는 그 흐름 속에서 녹아 없어진다는 것도 알기로 하자.
새해를 맞으면서 미래를 깨우는 일에 정성을 바치며, 삶을 희망으로 열어가는 날을 그리워 하자.
지난 한 해 동안 깊은 배려와 성원을 보내 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 드리며, 새해에는 더 많은 축복이 내려지길 소망한다.
김지원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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