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좌 등이 밀풍군을 추대해 일으킨 무신지변 (2부)
2015.01.22 15:56:00
이하와 이유익은 말하기를 ‘우리들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내가 장차 너를 죽이겠다.’ 하였고, 권서린은 말하기를 ‘영남을 탐지하는 일은 밖으로부터 기병(起兵)을 해야 가하다.’ 하였습니다. 신이 정월에 영남으로 내려가 김홍수와 정희양의 집에서 탐지했더니, 1백20명의 군사로 하고 날짜는 초 10일이라고 했습니다. 신이 이런 일을 알고 돌아와 장차 응병하고자 하여 15일에 과연 거사하였습니다.
호남의 허실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신의 동생이 5형제인데, 이웅좌가 울면서 말렸고 기타 형제는 이준좌·이기좌이며, 끝의 동생은 아명이 기아입니다. 신의 이름은 본래 현좌(玄佐)였는데 인좌로 고쳤습니다. 신이 봄에 동성 5촌인 이홍부의 집에 올라왔는데, 이홍부가 풍설에 대해 묻고는 인하여 말하기를 ‘왜 박필현과 사귀어 남의 말을 듣게 하느냐? 근신하라.’고 경계하였습니다. 뱍필현은 재작년 상주로 이사할 때 보아 잘 압니다.
모의는 모두 박필현이 지시했으며 자객은 반드시 정행민이 보냈을 것이고 자객이 될 만한 자는 목함경과 정중복·정중익 등 형제이며 직산에 사는 권서린 역시 용력이 있고, 박준은 죽산에 살며 역시 용력이 있는데 군중에 와 있었고, 정중려는 직산에 삽니다. 이 밖에는 용력이 있는 자는 없습니다. 정행민과는 영(營)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들으니 정행민이 효용(驍勇)한 무사를 뽑아 자객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권서룡은 15일에 한성으로 보냈더니 겁이 나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경상도에서 초닷새에 기병한다고 잘못 전해졌기 때문에 신들 역시 지레 먼저 기병한 것입니다. 청주 병사를 반드시 먼저 제거해야 일이 완비되고, 고단한 군졸로는 한성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청주를 함락시킨 것입니다. 경중(京中)을 정탐하기 위해 박준을 올려 보냈으나 아직까지 소식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유익의 집에 보냈는데 모양은 구레나룻인 늑염(勒髥)이 있고 복색은 도포를 입었으며 18일에 올라왔습니다. 김중만 역시 알았는데 중간에서 약속을 어기고 속였습니다. 권서린은 중간 키에 수염이 조금 나고 얼굴이 얽었으며 백포 도포를 입었는데 역시 이유익의 집으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징관 역시 동당(同黨)인 듯한데, 동당과 약속하기를 ‘비록 패하더라도 다시 청주에서 만나 성을 지킬 수 있으면 지키고, 지킬 수 없으면 재를 넘어 함께 태백산으로 들어가자.’고 하였습니다. 정행민이 변산(邊山)의 도적과 통하며 금방 올라온다고 하였으나 소식이 없고, 청주에 남아 있는 병사는 모두 관군입니다. 신이 대원수가 된 것은 바로 적도 가운데 권서린 무리가 모두 추존하여 삼은 것이며, 홍양산(紅涼傘)은 신이 스스로 대역 부도의 일을 한 것입니다.
정행민은 바로 고 상신(相臣) 정인지의 후손입니다. 이유익과 조덕징이 밀풍군의 집을 왕래한 것은 대개 조덕징이 밀풍군의 처질이기 때문인데, 이유익이 직접 가지 않고 조덕징을 시켜 탐문하기를 ‘외간에 이러한 말이 있다.’고 하니, 밀풍군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덕징은 나이 스무 살 남짓되며 이삼은 그 안에 들지 않아서 처음에는 이유익과 더불어 제거할 뜻이 있었습니다.
남태적의 일은 신이 이유익과 한세홍에게서 들었는데, 남태적은 꾀를 써서 피하였고 남태징은 어리석은 자라서 그 가운데 들었습니다. 이유익이 말하기를 ‘이사주와 밀풍군은 4촌이 되므로, 만약 영남으로부터 오게 되면 마땅히 할 듯하다.’고 하였습니다. 괘서(卦書)의 일은 이하가 전라도에 가서 들으니, 나씨 성을 가진 사람과 산음 사는 정가가 했다고 합니다. 나가에게 물으면 알 수 있는데, 나가는 바로 나숭대의 7촌숙 나만치입니다.
황익재와 김홍수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여서 김홍수는 말하기를 ‘마땅히 함께 일을 할 듯하다.’ 하였는데, 신은 단지 김홍수의 말만 들었지 황익재의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임서호는 신이 아는데 역모에 동참한 것이 확실합니다. 조관규는 신이 알지 못하나 임서호가 동참했다고 말하였으며, 조덕징은 신이 알고 있었는데, 얼굴을 보기 전에 이미 들었습니다. 정월에 왔을 때 이하의 집에서 동참하여 난만하게 모의하였는데, 그가 비록 나이가 젊어 주장하지는 못했으나 동참한 것은 확실합니다. 이만과 이의형은 군중에 갔으며, 조동규는 신이 알지 못하고 단지 임서호의 말을 들었을 뿐입니다. 나숭대는 신이 모르는 사이지만 역모한 것이 확실합니다.”하였다.
▲ 이인좌가 일으킨 무신지변 ©편집부
1890년 1월 27일 고조가 전교하기를 “우리 영조 대왕의 묘호를 추증했으니 훌륭한 공적이 더욱 빛날 것이다. 영원히 의심할 바 없는 의논이 오늘을 기다린 것 같다. 옛 날을 슬퍼하고 새로 영광을 드리니 귀신과 사람이 모두 기뻐하리라. 아! 무신년(1728)의 무신지변을 오히려 어찌 말하겠는가? 태묘 사직이 위기일발에 처했으나 다행히 신무(神武)에 힘입어 제사를 그만둠이 없게 되어 우리 왕업을 반석같이 다져지게 하였으니 아! 훌륭하다.
다만 충성에 보답하고 공로를 기록하는 절차는 옛 날에도 지극하게 하지 않은 바가 아니었지만 이렇게 성대하게 예식을 거행하는 때에 성의를 표시하는 조치가 없을 수 없다. 고 봉조하 최규서, 해은부원군 오명항의 사판에 예관을 보내어 치제하고, 충민공 이봉상, 충장공 남연년, 충강공 홍림에게도 똑같이 치제하게 하라.
그 밖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과 공로 있는 사람들로서 보답하고 벼슬을 추증할 만한 사람들과 그들의 사손(祀孫)으로서 등용할 만한 사람들을 의정부에서 문건을 소급해 조사하여 계품(啓稟)하여 시행하도록 하라. 이렇게 전례를 크게 거행하게 되니 옛 일에 대한 감회가 더욱 깊어진다.
충헌공 김창집, 충문공 이이명, 충익공 조태채, 충민공 이건명의 사판에 승지를 보내어 치제하되 만일 지방에 있으면 지방관을 보내 치제하게 하라. 충정공 이홍술, 경무공 이우항, 충민공 윤각, 충장공 백시구, 충목공 이상집, 장민공 심진, 무민공 류취장, 충의공 김시태의 사당에는 예조의 관리를 보내 똑같이 치제하게 하라.”하였다.
원본 기사 보기: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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